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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정 (癡情) 3

남녀 간의 사랑으로 생기는 온갖 어지러운 정.


       민윤기는 한 학년을 꿇어서, 나와 같은 교실을 쓰게 되었는데, 전정국은 뭐가 그렇게 불만인 건지 학교 가는 차 안에서 연신 민윤기를 씹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민윤기는 이어폰을 한쪽 귀에 꽂았지만. 태양 빛에 반사 되어 반짝거리는 검정 리무진 안은 숨을 옥죄이는 듯한 적막함 속에서 민윤기의 이어폰 사이로 새어나오는 음악 소리만 들렸다. 창 밖은 맑고 구름 한 점이 없는데, 왜 이 안은 회색인지. 학교로 향하는동안에도 우리 사이에는 구름만 잔뜩 끼었다. 와이셔츠 소매를 정돈하고 넥타이를 고쳐 매고, 민윤기의 더러워진 겉옷 소매도 털어줬다. 그런 내 손길에 토끼 눈을 하고 쳐다 보는데, 그 모습이 귀여워서 살짝 웃었다. 그러자 옆에서 전정국이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뭐. 너도 소매 정돈 해 달라고?” 

“뭐래, 미친놈.”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며 전정국이 욕을 내뱉었다. 여튼 전정국 말 본새는 자기가 죽도록 싫어하는 길거리 깡패 새끼들과 맞먹었다. 이런 것도 아버지를 닮나, 싶었다. 그런 쓸데없은 생각을 그만 두려고 할 때 즈음, 차가 학교 정문 앞에 부드럽게 세워졌다. 전정국이 먼저 내리고, 뒤이어 민윤기가 이어폰을 빼고 내린다. 패딩 모자가 뒤집어져 있길래 다시 뒤집어 줬더니, 어느 틈에 전정국이 왔는지 검지 손가락으로 내어깨를 민다. 


“보는 눈 많으니까, 알아서 행동 조심해.” 


저 말만 내뱉고 학교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솔직히 전정국이 저런 말 하면 타격감은 없다. 민윤기가 하면 모를까. 후드집업 주머니에 손을 넣고 직사각형 모양의 담배갑을 만지작 거렸다.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꽤나 뾰족한 모양인지 모서리와 맞닿은 부분이 아렸다. 


      민윤기는 창가 자리를 좋아한다. 민윤기가 그 말을 내게 한 건 아니고 그냥 내 추측인데, 민윤기는 창가 자리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인다. 처음 이 교실에 발을 들였을 때부터 민윤기는 1분단 5번째 왼쪽 자리인 창가 자리에 앉았다. 옆자리에 앉을까, 생각했는데 관두기로 했다. 온전히 혼자인 민윤기는 어떤 모습일까, 싶어서. 

 공부를 열심히 한다. 민윤기는. 언제부터 쓰고 언제 챙겼는 지도 모르는 검정 뿔테 안경을 쓰면서 노트에 수학 공식들을 나열한다. 각자 푸는 시간이 오면, 또 코를 찡긋거리고 미간을 찌푸리면서 그 얇은 손가락으로 샤프를 돌린다. 그게 반복이다. 가끔은, 정말 아주 가끔은 창 밖을 보기도 하는데 그 땐내겐 민윤기의 동그란 정수리밖에 보이지 않는다. 무슨 얼굴을 하고 있을까. 내겐 온통 민윤기 얼굴 뿐이다. 


“저기, 윤기야.” 


가만히 책상에 엎드려서 민윤기를 보고 있었는데, ‘저기, 윤기야.’ 따위의 말을 하는 남학생 때문에 민윤기가 보이지 않았다. 씨발. 의자를 뒤로 빼 확인하는 조그만 민윤기의 옆모습에도 그림자가 져있다. 의자를 바로하고 민윤기의 앞에 서 있는 남학생을 확인했다. 반장.... 인가? 

반장.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이었다. 까칠한 애라고만 생각했는데, 보면 볼 수록 느낌이 쎄한 애. 보는 사람 기분더럽게 만드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진짜 기분 더럽네. 태형이 나즈막하게 중얼거렸다. 


“야.” 

“...나?” 

“너 때문에 햇빛 가리잖아. 비켜.”

“아, 아! 미안해, 태형아!” 


자기는 햇빛 가리는 지 몰랐다며 반장은 연신 사과했다. 태형이 다시 고개를 책상에 박으려던 찰나, 자기 자리로 돌아가던반장이 중얼거렸다. 


“김태형, 씨발 새끼....” 

“....” 

“....”

“야, 너 뭐라 했냐.” 


태형이 턱을 괴며 다리를 벌려 통로를 막았다. 너 뭐라고 아가리 털었냐고. 태형이 주머니 속 담배갑을 만지작 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뒷걸음질 치는 반장의 어깨를 세게 밀자, 사물함에 붙은 반장 앞에 태형이 서서 오른쪽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풀었다. 


“너 뭐라고 그랬냐고 내가 묻잖아, 지금.” 


말이 끝남과 함께 반장의 얼굴이 세게 돌아갔다. 살과 살이 맞닿은 파열음이 교실에 퍼졌지만, 그 누구도 먼저 태형을 말릴 생각은 없어 보였다. 아까 내 옆에선 잘도 욕하더니, 이젠 못하겠어? 두 번, 세 번, 반장의 얼굴이 돌아갔다. 야, 피 뱉어. 하는 태형의 말에 입 속에 차있던 피를 뱉곤 태형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미, 미안해. 내가, 내가 잘못했어.” 

“잘못했음 벌을 받아야지.” 

“....” 

“이빨 물어.” 

“김태형, 그만해.” 


태형이 다시 손을 들자, 윤기가 진절머리 난다는 듯 머리를 짚었다. 그만하라고. 태형이 손을 내리고 윤기를 바라볼 틈도 없이 윤기는 겉옷을 챙기고 반을 나갔다. 씨발, 진짜. 왼손으로 담배갑을 구긴 태형이 시계를 반장에게 던졌다. 


“이건 합의금.” 


곧이어 태형도 나가자, 다시 교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웅성거렸다. 


      학교는 7시가 다 되어서야 끝났다. 1학년인 정국은 먼저수업이 끝나 집에 간지 오래였고, 태형은 윤기 청소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집에 같이 가.” 


아무런 말도 없이 먼저 교실을 나가는 윤기의 뒤를 태형이 따랐다. 윤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까 구겨버린 탓에 구깃구깃한 담배갑을 손가락으로 쓸며, 태형은 할 말을 생각해 냈다. 한 번도 내가 먼저 할 말을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또, 민윤기에게 졌다. 


“아까... 그 일은 미안해. 너무 화나서 그랬어.” 

“사과를 왜 나한테 하냐. 반장한테 해야지.” 

“근데 너도 들었잖아. 걔가 나한테 욕하는 거.” 

“그거 화난다고 폭력으로 응징해?” 

“그럼 어떻게 해.” 


드라마에서 그러잖아, 폭력으로 응징하는 건 하수나 하는 짓이라고. 윤기는 태형을 가만히 쳐다본 후, 다시 몸을 돌렸다. 밑에서 기다리는 리무진이 보였다. 내리막길 탓에 민윤기의 머리카락이 덜렁더렁 거렸다. 태형이 윤기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윤기야. 그럼 고수는 어떻게 하는데?”

“그건 집에 가서 봐.” 


윤기의 머리에 볼을 비볐다. 하늘이 노을 지는데, 더럽게 예쁘다. 이걸 민윤기랑 단 둘이 봐서 더 예쁘고. 

리무진에 다다르자 차 문이 열리고 민윤기가 올라탔다. 나도 몸을 실었는데, 안에는 잔뜩 표정을 구긴 전정국이 앉아 있었다. 


“씨발. 내가 너네 청소 끝나는 거까지 기다려야 돼?” 

“....”

“민윤기. 너 집 가서 나 좀 봐.” 


윤기는 작게 고개를 움직였다. 행동이 작다고 해서 겁 먹은 건 아니었다. 그냥, 귀찮은 느낌. 


“김태형. 너 애 한 명 죽도록 팼다며?” 

“누가 그래.”

“전교에 소문 다 났어.” 


아버지 귀에 들어가면 어쩌려고 그래? 이미 아셨을 지도 모르겠다만은. 정국이 휴대폰만 들여다 보는 윤기에게 시선을 고정 시킨 채 말했다. 시계가 없어서 손목이 허전했다. 


“합의금 줬어.” 

“뭐? 현금 들고 다니냐?”

“시계.”

“얼마짜리.”

“삼천.” 


그런 애한테 삼천 짜리 주냐. 나도 후회 중이야. 태형이 손으로 엿을 만들어 보이며 머리를 창문에 기댔다. 민윤기는 누구랑 저렇게 문자를 한다고. 신경에 거슬리는 게 한 둘이 아니었다. 꿀꿀한 제 기분을 아는 것 마냥 밖에선 눈이 내렸다. 오질나게도 하얀 게, 딱 민윤기 닮았다. 와, 하늘에서 민윤기가 내리네. 이젠 진짜 미쳤나 보다. 


     집에 들어가자 마자 들은 건, 아버지의 잔소리였다. 현관에 들어섦과 동시에 내 오른쪽 뺨이 돌아갔다. 민윤기와 전정국은 저녁 먹으라고 방으로 보내더니, 나는 아버지 서재에서  저녁도 못 먹은 채로 맞고 있다. 


“너 애비가 쌈질 하라고 학교 보내준 줄 아냐?” 

“....죄송합니다.”


아버지의 말씀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히려 전정국과 민윤기가 들어간 부엌만 머리에서 아른거릴 뿐이었다. 당구채로 맞으면서도 민윤기 생각만 났다. 민윤기는 아버지한테 불려간 내 생각은 하고 있을까. 내 걱정 내가 민윤기 생각하는 것만큼 할까. 이런 쓰잘데기 없는 생각만 머리를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민윤기 생각을 하니까 당구채로 피터지게 맞은 곳도 아프다는 느낌이 없었다. 병이다. 중증.

아버지는 매질이 끝나자마자 연고를 가져와 종아리에 발라주셨다. 가끔, 이런 걸 보면 새로운 인격이 나타나기라도 한 건가, 싶은 생각이 든다. 당구차에 묻은 피를 휴지로 닦으며 갈색 서랍 속에서 은색 시계를 건넸다. 네 개인 시계 합의금으로 줬다며? 선물이다. 


“...감사합니다.”

“들어가 봐. 또 이런 일 생기지 않게 조심하고.” 


태형은 서재에서 나오자마자 앞에 놓여진 쓰레기통에 시계를처박았다. 더러워. 저녁 먹을거냐는 아줌마의 물음에는 거절했다. 민윤기를 봐야 뭐라도 먹힐 것 같았다. 부엌을 지나쳐 곧장 2층으로 올라갔다. 민윤기 방 앞에 서서 문고리를 돌리려는데, 살짝 벌어진 틈으로 방이 열려있음을 알 수 있었다. 민윤기가 평소에 문을 열어두던가. 아니다. 윤기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방 문을 닫는 편이었다. 꼭 뭐라고 숨겨둔 마냥 닫았는데, 왜. 태형은 살짝 문을 열어 몸을 반쯤 넣었다. 


“흐, 아, 잠, 잠깐만,” 

“뭘 잠깐만이야, 아, 엉덩이 좀 더 들어 봐.” 

“아으, 윽,” 


무슨 신음 소리, 태형이 몸을 좀 더 틀어 상대를 확인했다. 흑색 머리채를 잡은 사람은 전정국, 그 아래 허리를 들썩이는 사람은.... 아, 민윤기다.



윤기야, 이게 고수가 하는 짓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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