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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정 (癡情) 1

남녀 간의 사랑으로 생기는 온갖 어지러운 정.


    그러니까, 그 때는, 고등학교 2학년 때였을 거다. 오후 3시의 나른한 기분으로 홍차를 마시며 가만히 이질스러운 가족 사진을 바라 보고 있었는데, 시끄럽게 현관문이 열리고 들어온 아버지 틈에 끼여있는 허여멀건한 남자 한 명이 들어왔다. 그러고서 아버지가 대뜸 나에게 하는 말이, 김태형, 인사해. 이런 거였다. 


“...쟤가 누군데 제가 인사를 해요.” 

“네 형이야.” 


그러니까, 그 말은, 쟤가 내 형? 십팔 년 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가 갑자기 들여 보낸 애가 이제와서 내 형? 어이가 없어 입꼬리를 비틀어 웃음을 내비추자, 아버지는 값 비싼 은색 롤렉스 시계를 풀었다. 이름은 민윤기니까, 네가 얘 방에 좀 데려다 줘. 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참, 이상한 아이였다. 낯선 곳에선 알아서 몸을 사릴 법도한데, 고개를 꽂꽂이 치켜 세우며 허리는 곧게 펴고 조용히 계단을 올라가는 내 뒤를 따랐다. 발자국 소리 하나 들리지 않은 채로. 키를 이용해 손잡이를 따고 문을 열어 젖혔다. 


“키, 안 줘?”

“...내가 왜?”

“내 방 키를 네가 가지고 있을 거냐, 그럼.”

“그럼 안 돼?”


이러려는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 애의 창백한 피부를 보자, 그 애의 가느다란 눈꼬리를 보자, 그 애의 붉은 입술을 보자, 나도 모르게 모난 소리가 튀어 나왔다. 그 애는 내 말에 피식,웃더니 그러던가, 라며 겉옷을 옷걸이에 걸고 침대에 앉았다.팔다리가 비실비실해 보이더만은 침대에 앉아도 깊게 꺼지지가 않았다. 딱히 할 것도 없어서 방 문에 기대어 그 애를 가만히 뜯어 보았다. 머리는 차분한 흑발에 생머리, 피부는 흡사 정액 마냥 희고, 입술은 피 마냥 붉다. 살짝 매서운 눈꼬리가 날카롭고, 죽은 것처럼 보이는 눈은 허망해 보였다. 그 아래 양 볼에는 살짝 홍조가 올라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겉옷에 눈이 좀 붙어 있었던 것 같기도. 간 밤에 눈이 왔었던가,  하는 시시콜콜한 생각에 잠겨, 멍하니 그 애를 바라 보던 즈음에 점점본래의 색을 찾아가는 양 볼에 다짜고짜 그 애의 뺨을 갈겼다. 


“...야, 안 그래도 빡치는데 짜증나게 굴지 마.”

“넌 볼이 붉은 게 예뻐.”

“그게 무슨 개소리야.” 

“이따 밤에 들를게. 기다리고 있어.”


태형은 정말 제가 무슨 개소리를 하나, 싶었다. 때마침 밥 먹으라며 밑에서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에 살짝 볼에 손을 가져다 대곤,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얼굴 좀 정리하고 내려 와. 아버지가 걱정하실라. 뒤에서 작게 욕을 내뱉는 윤기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내가 아까 윤기의 뺨을 갈긴 거, 태형조차 예상하지 못한 행동이었으며, 본능에만 이끌린 행동이었다. 태형은 계단에 우두커니 멈춰, 머리를 짚었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던가. 자꾸 머릿속에서는 민윤기의 얼굴만 담겼다. 심장이 아리게도 뛴다. 작은 감정조차 통제하지 못하는 짐승같은 새끼. 이거, 꼭 전정국이라도 된 것 같잖아. 머리를 쓸어 넘기며 밑으로 내려 가니, 먼저 자리에 앉아 있는 아버지가 눈에 보였다. 손목엔 항상 밖에 나갈 때 차던 은색 롤렉스 대신 금색 롤렉스가 채워져 있었다. 


“아버진 항상 집에선 금색 차시네요.”

“밖에서 금색 차면 멋 모르는 깡패 새끼들 같잖냐. 그런 새끼들하고 똑같은 취급 받는게 기분 좋은 줄 아니?”


손에 더러운 피 묻혀가며 이 회사를 여지껏 키운 사람이 누군데 그런 말 하실 자격이 있으세요, 라고 말하려는 걸 억지로 눌렸다. 아버지의 화를 돋구어, 득이 되는 건 없었다. 조용히 자리에 앉은 태형이 가만히 스테이크를 썰었다. 아버지도 이럴 땐 참 신기해요. 뻔뻔한 게 꼭 어머니를 닮았다니까. 곧이어 윤기까지 차리리 앉자, 아버지는 입술을 움직이셨다.


“정국이, 아마 내일 오전 즈음에 한국에 들어올 거다.”

“아, 벌써 5년이 지났어요? 시간 참 빠르네. 걔가 어제까지만해도 집에 있었던 거 같은데. 근데 아버지. 아까부터 계속 묻고 싶었던 건데요, 쟤는 왜 전윤기가 아니라 민윤기예요? 제 형이라면서요.” 


아, 설마 아버지가 그렇게 사랑하시는 어머니가 밖에서 싸지르고 온 새끼가 저랑 얘였어요? 나만 있었던 게 아니구나. 몰랐네. 하며 마지막 고기까지 입에 넣은 태형이 우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윤기의 곁을 스치며 중얼거렸다. 


“다행이네, 우리. 가족 아니네. 그렇지?” 


     전정국이 돌아온다라.... 정국은 저에게도, 아버지한테도 꽤나 어지러운 존재였다. 돈 많은 집에서 태어 났다고 방탕하게 사는 덕에, 집안 여럿 엎었다. 한동안 또 골치 아프겠네. 잠시 머리를 식힐 겸 테라스로 나왔다. 옆을 보니 언제 올라온 건지 옆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는 민윤기가 눈에 들어왔다.


“담배 피는 사람의 정액은 쓰대.”

“네가 먹을 거 아니니까 닥치면 안 될까.”

“그건 밤에 보고 결정하자. 내가 불면증이 좀 심하거든.” 


담배를 슬리퍼로 지진 후 다시 제 방으로 들어가는 윤기에, 태형은 가만히 시선을 옮겼다. 그거 아버지가 아끼시는 슬리퍼인데. 윤기는 말 수가 적다.  딱히 말을 하려 애쓰지도 않고, 무슨 말을 해도 반응이 없으니 재미도 없다. 근데 또 어떤 사람인지는 궁금해서 말을 붙이게 된다. 웃는 모습은 어떨까, 우는 모습은? 그리고... 사랑하는 모습은 어떨까. 다른 연인들처럼 사소한 것 하나에도 웃음이 터지고 질투하고 몸을 부빌까. 붉게 타오르는 노을을 보자니, 다시금 윤기의 발간 볼이 생각나 아랫배가 간지러웠다. 문득 방을 한 층 위로 옮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이 잘 보인다는 점에선 옆이 좋은데 혹여나, 민윤기가 부담스러울까 생각해서였다. ...아, 내가 또 이런 사람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민윤기만 떠올리면 이렇게 된다. 내가 내가 아닌 것처럼, 내가 나를 통제할 수가 없게 된다. 아까 민윤기가 태웠던 담배처럼 민윤기 생각이몽게몽게 피어 오른다. 또 민윤기가 보고 싶다. 


“무슨 일이야.”

“내가 아까 밤에 들른다고 했잖아.”

“지금 여섯 시야. 초저녁.”

“저녁 먹으면 다 밤이야.” 


책을 덮은 후 책상에 걸터 앉은 윤기가 아니꼽게 태형을 바라봤다. 용건이 뭔데, 그래서. 


“그 전에, 침대에 좀 앉아도 돼? 나 다리 아픈데.” 

“내 허락을 왜 맡아.” 


아, 그러게. 사실 너한테 선택지 같은 건 없긴 했는데, 너만 보면 배려하는 척이라도 하고 싶더라. 태형이 책상에 걸친 윤기의 허리를 끌어 같이 침대에 앉았다. 뭐, 곧 윤기 손에 의해내쳐지긴 했지만. 


“윤기야, 우리 형제 아냐.”

“형제 될 일도 없어. 그게 왜.”

“그러니까 내 말은, 우리 몸 한 번 진탕 섞어도 상관 없다는 거지.” 


그 말을 끝으로, 태형이 윤기의 손목을 잡아 제 품 안에 가두곤 입술을 부볐다. 곧이어 질척하게 움직여 서로를 옭아매고 쓸어 내리고를 반복했다. 읏, 하는 짧은 신음과 함께 태형을 민 윤기가 손등으로 늘어진 타액을 닦았다. 


“윤기야. 난 권력에 욕심 없어. 가지고 싶은 마음도 없고, 그걸 휘두를 생각도 없어.” 

“.....”

“난 네가 원한다면, 네 손에서 놀아줄 의향은 차고 넘쳐.”

“네가 왜 나한테,”

“내가 널 좋아하거든.”


그러니까, 그냥 나 이용해서 위로 올라가. 내 감정 따윈 신경 쓰지 말고, 철저히 너만 생각하면서 올라와. 나 가지고 놀아도 돼. 내가 널 좋아하니까, 괜찮아. 


     전정국이 돌아왔다. 검은 밍크 코트와 검은 수트를 쫙 빼입고, 한 손으로 캐리어를 끌며 집에 돌아왔다.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나는 안중에도 없는지, 배고프다며 밥을 준비해 달라고 명령 아닌 명령을 하고는 윗층에 올라갔다. 좀 이른 시간이라 민윤기는 잘 거고.... 윤기가 깨어나지 않는 이상, 둘은 오후 시간까지 마주칠 일 없겠네. 편한 옷으로 갈아 입고 내려오는 정국이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 모습에 보였다. 


“제 것도 준비해 주세요.”

“뭐야, 넌. 아침 식사를 역겨운 보면서 먹고 싶진 않은데.”

“아버지한테 인사는 드렸냐? 네가 싸지르고 간 일들이 많아서 아버지가 요 근래 좀 늙으셨거든.”

“그래? 잘됐네. 빨리 좀 돌아가시라 그래, 그 양반.”

“식구가 한 명 더 늘었어. 민윤기라고 네 아랫방 쓰고 있거든. 오고 가며 얼굴 좀 봐. 아, 건들지는 마. 이미 내 소유라, 네가 건드는 건 좀 그렇네.”


솔직히 말하면 내가 민윤기 소유가 된 거긴 하지만. 


“좆 같은 게 너로도 벅찬데, 더 늘었어?” 


마냥 좆 같지만은 않을 걸. 스테이크를 한 점 입에 넣었다. 아, 마침 저기 내려오네. 생각보다 일찍 깼네, 윤기야. 태형의 말에 정국이 고개를 돌려 윤기를 확인했다. 단정하게 내린 머리를 윤기의 시선과 정국의 시선이 공중에서 얽혔다. 윤기가 먼저 시선을 피하고 담배를 지졌던 슬리퍼를 질질 끌며 화장실로 향했다. 


“쟨, 씨발, 어디서 데려온 거야?” 

“....”

“어디 무슨, 사창가에서 데려온 거 아냐? 생긴 건 허얘서 무슨 좆 물리게 생겼는데?” 

“아까 말했지. 쟤 내 소유라고.”

“쟤가 왜 네 소유야. 네가 돈 주고 사기라도 했어?”

“쟤 시간을 내가 살 생각이기도 하고. 아, 정국아. 늘 생각하는 거지만, 넌 생각이 너무 짧아. 너 없는 동안 내가 쟤랑 아무 짓도 안 했을 거 같아?” 


살짝 정국의 머릴 쓰다듬고 그대로 부엌을 빠져 나왔다. 그런태형의 뒷모습을 보며 정국은 태형이 쓰던 칼을 집어 던졌다.이래서 씨발, 김태형이 싫어. 재벌 집 아들 주제에 어디서 굴러 먹다 온 지도 모르는 년하고 몸을 섞어. 더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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